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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후소(繪事後素)

회사후소(繪事後素)

 

 

 

 

작품명: 회사후소(繪事後素)

화선지: 35cm x 35cm

 

1.

회사후소 (繪事後素) 라는 말은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책인 논어에 나오는 말입니다.(팔일(八佾)이라는 장에 나옴).

 

어느 날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자하(子夏)가 선생님인 공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자하가 살던 위나라에서 유행하고 있던 노래 ( 요즘 같으면 로제와 브루노마스의 '아파트' 정도된다고 할까요?) 중에 나오는 가사의 의미에 대해 물었습니다. 공자가 자하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한 말씀입니다.

 

자하가 물었던 노래의 제목은 '석인(碩人)'이라고 합니다. 석인의 석(碩)자는 '크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말로 문자그대로 해석하면, '큰 사람'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그냥 큰 사람이라고 하면 별로 감흥이 없습니다.

이를  '덕이 있는' (https://m.blog.naver.com/hanhyi/222176675778) 사람, 또는 '훌륭한' 사람 (https://kydong77.tistory.com/5307) 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제(濟)나라 제후의 딸로서 위나라의 군주인 위장공 (衛莊公)에게 시집을 온 여인인 강씨(姜氏)입니다(장공의 부인 강씨 라는 의미에서 장강(莊姜)이라고도 부른답니다.  그렇게 본다면,  느낌이 너무 고리타분하고, old 해 보입니다. 좀 더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키크고 늘씬한, 멋지고 세련된, 모델 같은 느낌의 아름다운 여인을 일컫는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늘씬한 몸매의' 여인, '멋진' 여인, 좀 더 과감하게 나가면, 섹시한 몸매에 청순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보면 손예진이나 전지현 같은 느낌에 가까울 듯할까요?.

 

노래의 가사 중에 '교소천혜(巧笑倩兮), 미목반혜(美目盼兮)'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웃으면 보조개가 생기면서 너무 이쁘고, 아름다운 눈동자는 또렷하구나.' 라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그 뒤에 '소이위현혜 (素以爲絢兮)'라는 구절을 자하는 덧붙였습니다. 이 구절은 원래 '석인'이라는 노래에는 없는 구절입니다.  우리말로 풀면 흰색으로써 채색을 하는구나' 정도인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거지요.

다른 사람들이 해석한 것을 보내 하얀 색으로써 다른 채색된 색을 더욱 빛나게 한다 정도로 해석하는 것 같습다. 아마, 노래 가사 해설집이나, 장강의 모습을 찬양하는 이들이 하얀 피부가 더욱 이목구비를 더해준다는 의미에서 쓴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좀 뜬 금이 없어 보입니다. 자하는 그래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지 공자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何謂也)' 하면서 말입니다.

 

공자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고 합니다.

'회사후소(繪事後素)'

 

이 상황을 설명하는 다른 글을 보면, 공자가 자상하게 자하에게 '회사후소'라고 답변했다는 것이 있는데, 아무리 봐도 자상한 모습이 없습니다. 여기 어디 자상함이 묻어 나오는지 눈을 씻어도 저는 보이지 않습니다...(아마도 제가 눈이 나빠서 그럴지도 모릅니다만, 옛날에는 대나무를 자른 죽간에 글을 써서 남겼으므로, 가장 필요한 말만 옮겨 적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앞 뒤 불필요한 것은 다 자르고 가장 핵심적인 것만 남겼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2.

회(繪)는 그림이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미술 그림을 회화(繪畵)라고 할 때의 의미입니다. 사(事)라는 말은 일이나, 행사, 작업을 말하고, 후(後)는 시간적으로는 어떤 일을 한 후, 공간적으로는 어떤 사물의 뒤를 뜻합니다. 소(素)는 누에에서 실을 뽑을 때, 하얀 실이 나오는데, 아주 순수한 하얀 색을 말합니다. 나아가 아무 것도 더하지 않은 원래 그대로의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답니다.

회사후소의 뜻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로 해석이 나누어집니다.

 

1) 그림을 다 그린 후에 흰 색(素)으로 기존에 채색된 것을 더욱 빛나게 한다.

 

2) 그림을 그리기 전에 바탕을 깨끗이 하고 또는 흰색을 칠하고, 그 위에 채색을 함으로써 더욱 그림이 빛나게 된다.

 

송나라 대까지는 1)의 뜻으로 대부분 해석을 했었답니다. 그런데, 2)의 뜻으로 해석한 것은 송(宋)대의 대학자인 주희(朱熹)입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주자(朱子)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가 그렇게 해석한 것은 공자가 회사후소라는 답을 준 후에, 자하가 다시 물은 내용과 연관이 있습니다.

 

'회사후소'라는 말을 들은 후에 자하는 다시 물었습니다.

 

예후호(禮後乎)?

(그럼 예(禮)라는 것도 뒤에 오는 것이군요?)

 

공자는 그 말을 듣고, '상(商, 자하의 이름)아야. 너는 한 가지 말을 들으면 열가지를 아네. 네가 나에게 영감을 주는구나. 이제 시경(詩經)을 읽고 대화를 나눌 만 하구나!'

(子曰, 起予者, 商也. 始可與言詩已矣)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禮) 가 나중에 온다는 말을 주자는 인의예지신과 같은 덕목 중에서 인(仁)이라는 기본적 바탕이 깔린 다음에 예가 더할 때,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 된다는 것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후(後)는 전치사가 되고, 소(素) 라는 것 다음에 회사(그림 그리는 일)가 따른다는 의미가 됩니다. 송대에서는 그림을 그릴 때, 비단에 먼저 흰색으로 칠한 다음, 그 위에 채색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문화적인 토대를 전제로 바탕을 가지런하고 깨끗이 한 다음 예를 차리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자는 예라는 것을 매우 형식적이고, 장엄한 것으로 파악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예를 차리기 위해서는 밑바탕의 인격적 요소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에는 그림을 그릴 때, 채색을 한 다음, 마무리 할 때, 채색된 주변을 흰 색으로 가지런하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회사후소라는 말은 그림을 다 그린 다음 흰 색으로서 정리를 해서 그림을 더욱 빛나게 한다라는 의미가 되고 말죠. 

 

그렇게 되면, 자하의 예가 뒤에 오는군요? 라는 말은 앞의 모든 것들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예라는 것이군요?라는 뜻이 됩니다. 이 때의 예는 거추장스럽고 화려한 예가 아니라, 사람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박(素朴)한 요소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3. 제3의 해석

1)번과 2)번의 해석 중에 뭐가 맞는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원래의 뜻인 1번에 좀 더 손을 들어 주고 싶습니다.

 

한 편, 이와 다른 제3의 견해가 있다. 글을 가르치는 선생님과 서예와 예술을 하는 대화 중에 추사 김정희에 대해 토론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예술은 자기표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대상과 세계를 표현하게 된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대상과 세계를 내면화하게 됩니다. 마지막에 이르면, 모든 잡다한 것을 들어내고, 가장 본질적인 것만을 남기게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자기자신의 모습이 됩니다. 결국은 예술은 자기 자신을 그리는 일로 귀결이 된다는 것이죠. 추사체는 다름 아닌 말년의 김정희 자신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추사체 자체가 살과 근육을 다 드러내고 오로지 에센스, 정수만을 남긴 형태(素)입니다. 마치 고려의 화려한 청자가 조선의 소박한 백자로 탄생했듯이...

 

그런 토대로 해석을 하면 회사후소는 다음과 같은 풀이 됩니다.

'예술은 마지막에는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 된다.'

 

회사후소(繪事後素)

 

4. 작품제작 의도

 

공자의 말씀인 회사후소를 서예작품으로 표현하여 보았습니다. 하얀 색 바탕의 35cm x 35cm 크기의 화선지에, 검은 먹으로 옛 선인의 뜻을 예서(隸書)체로 적어 보았습니다. 예서체 중에서도 특정한 법첩에 얽매이지 않고, 작가 만의 개성을 불어 넣고자 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예서체는 좌우방향으로 좀 더 넓게 퍼지는 형태가 강한 데, 여기서는 종으로 좀 더 긴 느낌이 나도록 글을 썼습니다. 이를 통해서 전서의 단정함과 아취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주로 사용하는 구성법이기도 합니다.

붉은 색의 인장은 낙관(落款)이라 합니다. 우측 상단에 작은 낙관과, 좌측 하단에 좀 더 큰 낙관으로 대칭을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작은 것은 두인(頭印)이라 하여 시작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좀 더 큰 것은 작가의 이름을 새긴 인장으로 성명인(姓名印)이라고 합다. 일반적인 서예 작품의 경우에는 긴 족자에 쓴 사람의 성명과 호, 그리고 작성시점이나 장소를 작은 글씨로 적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본 작품에서는 이들을 쓰지 않고, 순수하게 글의 의미와 글씨체가 주는 파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글씨의 본래의미와 생동감이 오히려 더 살아 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낙관을 대칭적으로 배치하여, 가운데의 검은 글씨와 낙관의 붉음이 더욱 대비되고 강렬한 느낌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단순한 서예을 넘어 붓이 지나간 자리의 꿈틀거림과 파워, 붉음과의 대비로 나타나는 강렬한 색감이 보는 즐거움을 더하고, 전체적으로 조형미를 갖추도록 하였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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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후소라는 문장의 뜻하는 바와 글의 생명력이 함께 염두에 두고 바라보면 더욱 감상하는 맛이 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