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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성공하는가?

T를 찾아서_1

최근에 'W더블유)'를 찾아서' 라는 강연을 유투브에서 보았습니다. 재미도 있었고 많은 통찰을 주는 강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연이 2008년에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강연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독창적인 투자분석과 경제평론으로 명성을 얻은 '박경철'님이 아주대학교에서 행한 강연이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1993년 대전의 한 종합병원에서 전문의로 일하고 있던 '박경철'님이 서울의 경제연구소에 는 한 친구가 특강을 들으러 오라고 초청을 받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의사의 수가 많지 않은터라 시간을 낼 구가 없어서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친구가 '오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거듭된 강요에 결국, 병원 원장님에게 허락을 구하고 특강을 들으러 갔답니다. 이 때, 미국에서 MBA를 마치고 돌아온 백수 친구도 함께 동반했습니다.

 

기대에 찬 마음으로 참석했는데, 나타난 강연자의 모습에 다들 놀랐습니다. 찢어진 청바지에 모자를 쓴 당시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파격적인 수준의 패션으로 강사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칠판에 'WWW'라는 글자를 쓴 다음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이 안에 들어올 것이라는 거죠. 듣고 있던 청중들이 다들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면서 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박경철님과 같이 온 친구만이 그에게 집중을 했다고 합니다. 강사가 강연을 마치고 나가는데, 그 백수 친구가 갑자기 돈 10만원을 빌려달라고 하더랍니다. 그 백수 친구는 그 돈으로 누구를 찾아갔을까요? 부리나케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타고 떠나려던 강사를 붙잡았답니다. 그리고 그 강사를 납치(?)하듯 해서 따라갔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박경철님에게서 첫월급을 강탈하듯이 빌렸답니다. 그 돈으로 대구에서 사무실을 열고 사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 친구가 얼마 후에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주소를 하나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답니다. 한창 투덜투덜 거리다가 그 친구가 시키는대로 주소를 만들었습니다. 무슨 주소냐구요?

지금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이메일(e-mail)주소라는 것이었습니다.

박경철님은 그때 망했다라는 것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 그는 친구가 하는 그 사업이 분명히 망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그 친구에게 빌려 준 돈도 받을 수 없게 되니까요.

그의 생각에 손으로 편지를 쓰는 일은 당시에도 극히 드물었고, 더군다나 컴퓨터로 편지를 쓴다니요?

 

그로부터 1년 후 그 백수 친구의 이메일 사업은 1년만에 250만명이 가입한 한국 최초의 상용 이메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백수 친구는 1999년도에 골드만삭스에 지분을 넘겼습니다. 현재는 벤처지주사의 회장으로 있다고 합니다.  그 정신나간 것 처럼 보이던 친구가 말이죠.

 

나중에 박경철님은 생각을 다시 해보았답니다. 어떻게 똑같은 이야기를, 똑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사람에게 들었는데, 어떤 사람은 그것에서 통찰을 얻어 인생을 걸게 된 반면, 자신은 정신나간 놈의 이야기로 무시해버리게 된 것일까하고 말이죠.

 

그는 제레미리프킨(Jeremy Rifkin)이라는 유명한 작가(경제학자, 사회학자, 환경운동가...)의 책(공감의 시대(The Empathic Civilization))를 읽으면서 그 해답을 찾았다고 합니다. 

 

'인류가 30만 년 전, 현생 인류의 유일한 자산은 돌도끼 뿐이었다. 20-30만년 후 인류는 어마어마한 발전을 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사실은 모든 인류가 인류 문명 발전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인류 문명 발전은 0.1%의 창의적인 인간이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생각히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꿈꾸지 못하는 것을 꿈꾸고, 여기가 새로운 세상이라며 어두운 곳에 깃발을 꼽으면 0.9%의 통찰력과 직관을 갖춘 안목 있는 인간이 그걸 알아보고 뛰어들어 한 배를 타고 등을 밀고, 팔을 끌어 당긴 1%가 만든 역사라는 것. 나머지 99%는 잉여인간(Organic Material) 즉, 유기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박경철님은 W가 의미하는 바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W는 0.1%의 창의적인 인간, 백수친구는 0.9%의 통찰력과 직관을 갖춘 안목있는 인간을 지칭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자기 자신은 이 1%의 W에 속하는 인간이 아니라 나머지 99%에 속하는 잉여인간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때를 놓친 박경철님에게도 기회는 옵니다. 그에게 새로 찾아온 W는 바로 휴대폰이었습니다. 

 

국내에 휴대폰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1984년입니다. 국내에서 첫 번째 휴대전화는 1984년에 출시된 "모토로라 DynaTAC 8000X" 모델입니다. 이 모델은 아날로그 방식의 이동전화로, 당시에는 매우 큰 크기와 무게로 인해 휴대성이 떨어졌지만, 이동통신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기기였습니다. DynaTAC 8000X는 주로 기업의 고위층 인사나 특정 사용자들에 의해 사용되었으며, 이후 휴대전화 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모델들이 출시되었습니다. 모토로라 DynaTAC 8000X는 1984년에 출시되었을 때 가격이 약 3,995달러였습니다. 이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높은 가격이었으며, 일반 소비자에게는 감히 쳐다보기도 힘든 제품이었습니다. 이 가격은 현재의 물가로 환산하면 훨씬 더 높은 금액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해에 한국에서도 최초의 이동전화 서비스가 시작되었고, 당시에는 아날로그 방식의 이동전화가 사용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기업이나 고위층 인사들이 사용하였고, 일반 대중에게는 보급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휴대폰 보다 '삐삐'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무선호출기'가 대세였던 시절이었습니다.  휴대폰이 처음 나왔을 때, 당시 시세로 따지면 거의 자동차 1대 값에 육박하는 휴대폰을 보고 그의 친구들은 '삐삐'가 있는데 왜 그걸 사람들이 사서 쓰겠냐고 하였습니다. 이런 말을 듣다가 그는 뭔가 비슷한 데쟈뷰를 느낍니다. 바로 W와 그의 백수친구 이야기라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휴대폰을 어디서 샀는지 알아보고, 또 자신이 무얼 할 수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박경철님은 의사였기 때문에 그러한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일이나 사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회사는 바로 한국통신주식회사였습니다. 이 회사는 나중에 SK텔레콤으로 바뀌게 되죠. 이 때, 박경철님은 월급에서 생활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으로 주식을 샀습니다. 그가 처음 사들인 주식의 가격은 2만원이었다고 합니다. 상장하면서 바로 6만5천원이 되었지만, 그는 주식을 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99년도에 주식을 매도할 때 주가는 52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박경철님은 자신에게 W와 백수 친구의 경험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서 유사한 사례를 살피면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그저 그런 99%의 잉여인간처럼 무시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생각해봅니다. 나는 1%인가 99%인가?

결론은 나는 죽어도 1%가 되기는 어렵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박경철님만큼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렇게 지를(?)만큼의 용기도 없고, 재무상태도 빠듯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정말로 99%에 속하는 사람은 기회가 없는 것일까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T입니다.